1970년대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기 전에는 이렇게 유가가 높지 않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석유시장이 구성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메이저 석유회사에서 중동의 나라들에게 싼값에 원유를 사들이고 간단한 공정을 거쳐 비싸게 팔았습니다.
1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게 된 계기와 1차 오일쇼크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이 전의 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말씀드렸다시피 1970년대가 돼서야 산유국들의 모임인 OPEC이 생겨났고 석유시장의 공급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일쇼크는 단순히 석유시장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1970년대 발생한 1차 오일쇼크의 여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목차
1. 오일쇼크에 영향을 받은 세계 금융
2. 1차 오일쇼크, 그 이후
3. 2차 오일쇼크가 다가온다?!
오일쇼크에 영향을 받은 세계 금융
원유를 직접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를 원유 순수입국이라고 부릅니다. 원유 순수입국은 원유가 모자라거나 원유의 가격이 비싸지면 나라의 경제가 전체적으로 어려워집니다. 1973년 처음으로 일어났던 제1차 석유파동은 금융권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2022년 3월에도 유가가 급등하여 오일쇼크라는 단어가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왔습니다. 오일쇼크가 발생하면 그에 따른 교역 조건이 악화되어 원. 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결국 우리나라의 금융시장과 무역 성과의 악영향을 미칩니다.
1970년대 있었던 두 번의 오일쇼크는 세계 금융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금리를 크게 올렸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2.25% 에서 2.50% 정도입니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와 이와 비슷한 연 2.50% 정도입니다. 기준금리에 대해서 기초적인 정보가 필요하시다면 아래 기준금리에 대해 정리한 글을 볼 수있도록 남겨놓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데 미국보다 금리가 낮아지면 돈이 빠져나가며 원. 달러 환율이 급등하기 때문입니다. 기준금리가 연 2.50%만 돼도 이자 부담이 커지고 시장 침체가 심화됩니다.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를 겪고 난 뒤 미국의 기준금리는 최고 21.6%까지 올랐습니다. 이는 예를 들어보자면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지금보다 8배에서 9배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자를 내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1973년 당시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5% 였습니다. 제1차 오일쇼크가 일어난 이후 인플레이션이 치솟자 이를 잡기 위해 최고 연 11%까지 기준금리를 올립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정환율제였기 때문에 원. 달러 환율을 20%나 인상해야 했습니다. 환율의 20% 인상으로 우리나라 도매물가는 11% 올랐고 소비자 물가는 이보다 더 많이 올랐습니다.
오일쇼크로 인해 물가와 원. 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올랐고 기준금리까지 올라갔던 상황, 현재 환율 상승으로 우리가 겪고 있는 소비자 물가 상승세와 비슷해 보입니다. 올해 들어 환율이 1달러에 1200원에서 현재 1400원까지 올랐습니다.
1차 석유파동, 그 이후
1973년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금리가 인상되고 물가가 상승되며 환율까지 상승세를 이어가 매우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1차 오일쇼크는 그 나름대로 진정되었습니다.
1차 오일쇼크의 주원인이었던 제4차 중동전쟁이 끝을 맺었습니다. 전쟁이 진행된 시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연 14.33% 까지 올랐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1974년에는 연 3.87%로 낮아집니다.
이후 중동지역의 원유 생산과 공급의 주도권이 미국과 영국에서 중동 국가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미국과 영국의 회사가 중동에서 원유를 발견하게 되면 바로 소유권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1차 오일쇼크와 4차 중동전쟁 이후로는 발견한 원유를 구매할 수 있는 권리만 가질 뿐 소유권은 해당 중동 국가의 정부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중동 국가의 정부에서 부르는 가격으로 원유를 계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이에 미국과 영국은 굉장히 못마땅해하면서 국제 에너지 기구(IEA)를 설립했고 프랑스는 석유 대신 원자력 발전에 집중하여 세계 최고의 원전 대국이 됩니다.
2차 오일쇼크가 다가온다?!
1차 오일쇼크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5년 뒤 1978년 12월에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합니다. 그러면서 1981년 미국의 기준금리는 한 번에 연 19%를 찍었습니다. (참고로 미국의 기준금리 최고 기록은 1981년 연 21.6%입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한 번에 19%를 찍으면서 우리나라의 금리 또한 난리가 났습니다. 1978년도에 이미 우리나라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서 예금 금리가 18.6% 였고, 대출금리는 19% 까지 찍은 상황이었습니다.
1978년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고 바로 그다음 해였던 1979년에는 추가적인 금리 인상 없이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해인 1980년에는 또 20%나 환율이 올랐고, 금리도 크게 올라가게 됩니다.
제1차 오일쇼크도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제2차 오일쇼크가 우리나라 경제에 더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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